님을 위한 도쿄 레터, 지금 시작합니다. 도쿄 레터
당신을 일본의 수도 도쿄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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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레터, 지금 시작합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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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안녕하세요. 김중황입니다. 구독자를 수합받은 후 적잖게 놀랐습니다. 절반이 훌쩍 넘는 분이 이미 직장인이셨고, 학생이더라도 정치, 경제 등 제가 쓰려는 분야를 이미 전공하고 계신 많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콘텐츠의 방향과 깊이에 대해 고민이 많았지만, 계획했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 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넓고 얕게 도쿄를, 일본을 알아가 보려 합니다.
도쿄 레터는 함께 만들어 나가는 콘텐츠입니다.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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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월드로의 초대,
와세다 대학 국제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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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 대학교 캠퍼스를 걷다 보면 독특하게 생긴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와세다 대학교 국제문학관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으로도 불립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무라카미 하루키는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의 졸업생입니다. 그는 여러 에세이와 인터뷰에서 대학 생활의 추억에 대해 회상합니다.
"제게 대학의 쓸모에 대해 많이 묻는데, 솔직히 대학에서 배운 것은 많이 없습니다. 우선 대학에 잘 오지 않았어요. 당시엔 파업과 시위 때문에 수업도 잘 열리지 않았고요. 그래서 대학 시절의 추억 또한 별로 없습니다."
추억이랄 것이 없어 보이죠? 하지만 대학 시절은 지금의 그를 만든 중요한 시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 주인공 와타나베와 비슷한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하루키는 대학 생활 동안 공부보단 음악과 소설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진로를 고민하다, 좋아하는 재즈 카페를 차렸고, 동기와 결혼해 수십 년을 함께 보냈습니다. 하루키는 이 모든 일을 학생 때 했고, 7년만에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오전에는 졸업 논문을 쓰고, 오후에는 재즈 카페를 운영하는 대학생 하루키. 상상이 가시나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택은 예전부터 방대한 책과 음반 컬랙션의 보관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도쿄의 집이 작고 불편해 보다 여유로운 가나가와 현으로 이사를 간 그였지만, 40년 가까이 쌓인 컬랙션을 보관하기에 한계에 부딫혔습니다. 자녀가 없는 하루키에겐 자신의 죽음도 염두에 두어야 했습니다. 자신 사후에 자료들을 관리할 사람이 없으니, 세상을 떠나기 전 컬렉션을 옮기는 편이 낫겠다 판단한 것이죠. “자료 기증으로 내 작품을 연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국제적 문화교류의 한 계기가 되면 좋겠다." 전세계 다양한 장소가 러브콜을 보냈습니다. 장고 끝에 그는 와세다 대학교에 그가 평생 모은 자료를 기증하기로 결심합니다. 바로 그가 학창 시절에 자주 다녔던 연극 도서관 건너편에 있는 건물에 말이죠.
1950년대 지어진 와세대 대학 4호관은 하루키가 "끔찍한 공간" 이라 말할 정도로 도서관으로 사용되기엔 부적절했습니다. 대대적인 리모델링이 필요했습니다. 그의 오랜 친구인 세계적인 건축가 구마 겐고의 도움이 필요했죠. 그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의견을 수렴해가며 리모델링 했습니다. 리모델링에 필요한 예산 120억원은 와세다 동문이자 유니클로의 회장인 야나이 다다시가 지원했죠. 건축과정의 주요 부분들은 이 세 명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진행했다고 합니다.
"짓고 보니 공적인 공간이 아닌, 너무 저희의 개인적인 공간처럼 보여서 미안한 부분이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새로 지어진 건물에는 세 사람의 취향이 깊게 베어 있습니다. 새롭게 리모델링 된 건물을 살펴봅시다. 구마 겐고가 디자인한 건물은 건물 밖과 안에 두 터널이 존재합니다. 구마 겐고의 건축에서 터널은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를 위해선 구마 겐고가 사랑하는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건축관을 알아야 합니다. 하이데거는 “건축은 탑이 아니라 다리다.” 라고 말했습니다. 탑은 고독하게 존재하지만 다리는 두 장소를 연결해 주고, 이것이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영감을 받은 구마 겐고는 자신의 건축의 특징을 터널로 설명합니다. 터널은 다리와 같이, 서로 다른 것을 연결합니다. 한 사람과 다른 사람, 우리의 사회와 다른 사회가 터널을 통해 연결됩니다. 이러한 구마 겐고의 건축관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하루키는 여러 작품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서로 다른 차원을 연결하는 터널 개념을 사용해 왔습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1Q84가 대표적인 사례이죠.
구마 겐고는 말합니다.
"현실과 가상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 작품에서 공존합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펴면 일상에서 비일상의 세계로 이동하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의 일상은 여러 제약이 있지만, 그의 소설은 이러한 일상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죠. 이 도서관 또한 비슷한 느낌을 주었으면 합니다."
이는 어떻게 적용됐을까요? 우선 도서관 외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도서관 외부엔 철로 된 구조물이 보입니다. 터널 같기도, 언뜻 보면 파도 같기도 합니다. 해석은 다양합니다. 파도인지, 터널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세상에 초대받았다는 메세지죠. 구마 겐고는 이를 건축적 공간으로 표현했습니다.
구조물을 통과해 도서관의 지하 1층으로 왔다면, 지하 1층과 1층을 잇는 나무 계단을 볼 차례입니다. 구마 겐고는 분리됐던 1층과 2층의 경계를 수직으로 절단합니다. 분리되었던 차원 간의 경계를 없앤 것이죠. 그리고 나무 계단이 있는 터널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현실과 가상을 잇는 터널을 상징합니다. 터널은 책꽂이와 같은 역할을 해, 작가의 서재에 있던 책을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삶과 죽음' 등 작가가 세심하게 설정한 테마에 맞춰 다양한 문학 작품을 하루키가 바라본 방식으로 접할 수 있습니다.
분명 구마 겐고의 도서관은 우리가 생각하는 도서관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구마 겐고는 우리가 생각하는 도서관의 개념, '조용히 해야 하는 장소' 개념을 깼습니다. 누구나 커피를 마시며 문학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활기찬 장소를 구상했습니다. 따뜻하고 활기찬 장소에서 대화는 농익습니다. 이런 장소를 만들기 위해선 어떤 건축 재료를 사용해야 할까요?
하루키 도서관의 주된 건축 재료는 나무입니다. 이는 동시에 구마 겐고가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건축 방향이기도 했습니다. 구마 겐고는 20세기의 건축을 단단하고 차가운 재료인 콘크리트가 지배한 시기라 말합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후, 기존의 건물들은 파괴되거나,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어려웠습니다. 건축가들은 대량의 건축 수요에 부응하려 애썼습니다. 넓은 면적의 건물을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고, 튼튼해 지속성까지 가진 콘크리트 건축은 하나의 혁신이었습니다. 20세기 건축을 상징하는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은 대표적인 예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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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경향은 20세기 내내 계속됐습니다. 르 코르뷔지에게 영감을 받은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노출 콘크리트를 활용한 건축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구마 겐고는 이들과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조금 약할지라도 자연과 어우러질 수 있는 나무를 선택했습니다. 나무는 콘크리트에 비하면 약하지만, 부드럽고 따뜻합니다. 구마 겐고는 이것이 자연과 함께 하는 건축이라 말합니다. 두 장의 사진 중 첫번째 사진은 구마 겐고의 히로시게 미술관 건물이고, 두번째 사진은 안도 다다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스미요시 주택입니다. 두 건축물의 차이가 보이시나요?
구마 겐고는 말합니다.
"도서관 안을 목재로 만들어 우리를 보호하고, 각자의 개성과 꿈을 키울 수 있기를 희망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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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태어나 자랄 수 있도록, 1층의 음악 감상실은 하루키의 음악 컬랙션에 담긴 음악을 재생합니다. 그가 창작을 하며 영감을 받은 음악들입니다. 이곳에는 수많은 CD 와 LP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 숫자는 몇이고, 어떤 앨범이 있을까요.
이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만여 점 정도지만 앨범의 이름이나 정확한 숫자는 비공개가 원칙이라 했습니다. "오늘은 무엇이 나올 거야." 하는 편견 없이 들으러 왔으면 하는 하루키 씨의 부탁이었다고요. 매일 다른 음악을 재생하고 있으니 언제 오더라도 다른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건축을 살펴보았으니, 카페를 둘러볼 차례입니다. 카페의 이름인 <오렌지 캣>은 하루키가 직접 지어준 이름입니다. 자신이 운영한 재즈바 <피터 캣> 과 이름이 비슷한데요, 이는 <피터 캣> 을 운영할 당시 하루키가 키우던 고양이 '피터' 의 종이 오랜지 캣이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카페 바깥쪽에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재즈 카페 피터 캣에서 직접 사용했던 피아노가 있습니다. 안쪽에는 하루키 자택에서 가져온 원목으로 된 6인용 식탁과, 하루키의 작업실을 재현해놓은 방이 있습니다. 방에는 들어갈 수 없지만, 하루키가 자택에서 직접 쓰던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실 수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기회입니다.
카페 <오렌지 캣> 은 개관 초기부터 지금까지 와세다 대학 학생 네 명이 직접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루키의 의지였습니다. 와세다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하루키는 인터뷰에서 "모든 것이 메뉴얼화 된 프랜차이즈가 아닌, 학생들이 카페를 운영하며 젊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고 말했습니다. 대학생 때 <피터 캣> 을 혼자 운영했던 그가 어느 날 소설 쓰기를 결심했던 것처럼 말이죠.
전 솔직히 이들의 실력에 대해선 조금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의 솜씨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습니다. 학생들에게 원두를 가지고 커피를 어떻게 내리는지 물었습니다. 긴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분쇄도를 체크하고, 원두 22g 을 분쇄해 95도에서 3분 간 일정하게 160ml 를 붓는 게 관건입니다. "한번에 물을 많이 부으면 감칠맛이 아닌, 쓴 맛이 늘어나요.", "미지근하거나 차가운 컵에 커피를 담으면 산미만 올라와요. 그러니 미리 컵에 뜨거운 물을 넣어 덥혀 놓아야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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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티 커피의 고정관념을 깨다
호리구치 커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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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캣>에 원두를 공급하는 곳이 궁금해졌습니다. 이런 디테일함은 원두의 특성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고, 이는 원두 공급처와의 긴밀한 소통이 없으면 하기 어려운 작업입니다. 오렌지 캣 카페에 원두를 공급하는 곳은 바로 호리구치 커피입니다. 호리구치 커피는 1990년 도쿄의 작은 가게에서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대형화에 성공한 일본 스페셜티 프렌차이즈 중 하나이죠. 현재 요코하마에 커피를 가공하는 공장이 있고, 도쿄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직영 매장을 운영하며 커피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다른 업장을 대상으로 한 블렌디드 원두 또한 컨설팅하며 판매하고 있습니다.
먼저 싱글 오리진 원두와 블렌디드 원두의 차이에 대해 짚고 가보겠습니다. 싱글 오리진 커피는 생산지가 하나인 커피를 말합니다. 생산지의 특성이 잘 나타나는 커피이죠. 블렌디드 원두는 여러 생산지의 커피를 섞습니다. 각 커피가 가지고 있는 고유성이 한데 합쳐져 새로운 맛을 내죠. 커피 시장에서 원두의 생산지와 특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페셜티 커피가 하나의 문화가 된 이후, 여러 원두가 섞인 블렌디드보다는 싱글 오리진 커피가 더 고급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하지만 호리구치 커피의 오너인 호리구치 토히시데는 말합니다.
“원두를 단순히 볶기만 하면 되는 커피를 판다면, 내 이름을 걸 이유가 없다”
싱글 오리진 커피를 전 세계에서 자기만 갖고 있다면 경쟁력이 생기겠지만, 아쉽게도 시장은 그렇지 않습니다. 생두를 대량으로 공급받은 업체는 여러 회사에 판매를 하게 됩니다. 커피를 볶는 로스팅 정도에 따라 차별화가 있을 수 있지만 분명 한계가 있죠. 일본만이 아닙니다. 한국의 유명 로스터리 카페 또한 시기마다 비슷한 원두를 쓰고 있습니다. 싱글 오리진 커피로는 차별화를 갖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호리구치 커피는 말합니다. 차별화의 답은 블랜디드 커피에 있다고 말이죠. 한 가게의 특성을 보여주는 데에 블랜디드 커피만큼 좋은 게 있냐는 말입니다. 블랜디드 커피의 조합은 무궁무진합니다. 중후한 디자인을 가진 카페라면 묵직하고 초콜릿 향이 나는 원두가 낫고, 산뜻한 디자인의 카페라면 꽃 향이 나는 커피가 비교적 잘 어울리지 않을까요. 물론 시기마다 다르게 들어오는 원두를 사용해 균일한 맛이 나게 만들긴 어렵습니다.
가게 혼자 모든 것을 책임진다면 정말 쉽지 않겠죠. 하지만 수십년 동안 커피 로스팅과 판매를 전문적으로 하는 기업인 호리구치 커피 팀과 함께라면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지요. 호리구치 커피는 자신의 매장을 위해 경쟁력 있는 블렌디드 커피를 만듭니다. 더 나아가 독특함을 갖추려는 업장을 위해 커피를 맞춤 제작하죠. 이것이 호리구치 커피가 경쟁력을 가진 비결입니다.
호리구치 커피는 <오렌지 캣> 의 원두를 어떻게 만들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우선 호리구치 커피의 블렌디드 커피 팀은 건물을 방문해 구마 겐고의 디자인과 건축 의도를 면밀히 관찰했습니다. 블렌딩 원두의 이름은 <Resonance>. 공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공진이라는 뜻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도서관엔 다양한 요소들이 존재합니다. 음악, 책, 대화. 수많은 요소가 공진하고 있습니다. 그 시간 속 마음을 나누는 모든 이를 위해 커피를 만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독서를 할 때, 음악을 들을 때, 친구와 이야기할 때, 이 커피가 긍정적인 화음이 될 수 있게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설명처럼, <Resonance> 블랜드는 달콤한 맛과 화려한 맛을 동시에 냅니다. 도서관에 들어왔을 때 우리가 느낄 놀라움과, 좋은 대화를 들었을 때의 편안함이 커피 한 잔에 담겨 있습니다.
호리구치 커피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후, <오렌지 캣> 에서 커피를 결제하려는데, 카페 직원이 제 휴대폰 뒤에 있는 스티커를 보고 반갑게 말했습니다. "저기, 이 공간을 가보신 건가요? 저도 참 좋아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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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붐비는 일요일의 거리는 나를 진정시켜 주었다. 나는 통근 전철처럼 혼잡한 기노쿠니야 서점에서 포크너의 《8월의 빛》을 사들고, 가급적 소리가 클 듯 싶은 재즈 킷샤로 찾아 들어가, 오네트 콜만이라든가 버드 파웰의 레코드를 들으면서, 뜨겁고 진하고 맛없는 커피를 마셨고, 방금 산 책을 읽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중.
도쿄 요츠야 역에서 나와 3분여를 걸으면 있는 Eagle (이구루)는 재즈 킷샤입니다. 재즈 음악 감상이 목적인 카페죠. 재즈 킷샤는 재즈와, 오래된 카페를 뜻하는 일본어 킷샤텐 (喫茶店) 을 합친 단어입니다. 일본 여행 중 옛스러운 카페를 가고 싶다면 잊지 말아 주세요.
재즈 킷샤는 1929년 도쿄에서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당시의 도쿄는 상하이와 함께 재즈가 아시아로 들어오는 창구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재즈 음반은 가격이 비싸 쉽게 들을 수 없었습니다. 재즈 팬이나 뮤지션에게 수천장의 레코드가 있고, 커피 한 잔을 주문하면 재즈 레코드를 실컷 들을 수 있는 재즈 킷샤는 보석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개점부터 폐점까지 커피 한잔으로 버틴 이도 있었다고 하니, 요즈음의 카공족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일흔이 넘은 사장 고토 마사히로 씨는 1967년, 20세에 이구루를 열었습니다. 그는 올해로 77세를 맞이했지만, 57년간 변함없이 이구루에서 커피를 내리고, 재즈를 선곡하고 있습니다. 재즈 킷샤 이구루의 하나뿐인 규칙은 간단합니다. 대화 없이 음악에 집중할 것.
오전 11시 반부터 오후 6시까지 재즈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이구루에서의 대화는 금지입니다. 주문과 계산을 제외한 대화는 거의 이뤄지지 않습니다. 고토 씨는 그 이유에 대해 말합니다. “영화나 공연을 볼 때 이야기를 하지 않지요. 이곳에서 대화를 지양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이 공간에서 음악 소리, 그릇 소리가 전부입니다. 도쿄에 있는 동안 세 번을 갔음에도, 두 명 이상 온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이구루의 시간은 온전히 ‘자신’ 을 위한 시간입니다. 이곳에 오는 이들은 다양합니다. 티셔츠를 입은 10대 학생부터, 정장을 입은 30대 직장인, 모자를 쓴 70대의 할머니까지 다양합니다. 하는 일도 모두 다릅니다. 그저 눈을 감고 몸을 흔들며 재즈의 리듬을 타는 이,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는 이도 있습니다. 가져온 책을 읽는 이도 눈에 띕니다. 저도 도쿄의 재즈 바에 관한 책을 책꽃이에서 골라 자리에 앉았습니다.
사용 중인 JBL 4344 스피커는 재즈의 전성기인 1970년대에 출시된, 재즈를 듣기 완벽한 스피커 중 하나입니다. 가장 미국적인 스피커는 부담스럽지 않은 음량으로 재즈를 들려줍니다. 하나의 앨범이 끝날 때마다 고토 씨는 음반으로 가득 찬 작은 방에 들어갑니다. 다음 음악을 튼 후, 다시 나와 앨범 자켓을 밖의 거치대에 새워둡니다. 지금 나오는 음악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배려입니다. 사장인 고토 씨는 제게 선곡표를 보여줬습니다. 선곡표에는 어떤 앨범의 몇 번 트랙을 어떤 순서로 몇 번씩, 총 몇 분 동안 들려줄 것인지 빽빽이 쓰여 있었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처럼 재즈를 들을 때도 순서가 중요합니다."
스타벅스와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의 부상, 가정용 오디오 장비의 발달과 같이 재즈 킷샤는 여러 번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 중 가장 위협적이었던 것은 운영자의 고령화였습니다. 재즈 킷샤의 전성기였던 시대에 젊은이였던 이가 이제 나이가 든 것입니다. 1957년에 개업해 도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재즈 킷샤였던 '마사코' 는 주인이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결국 가게를 물려받을 이를 구하지 못해 2010년 문을 닫았죠. 이러한 상황에서 찾아온 코로나-19는 재앙과도 같았습니다.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재즈 킷샤를 운영하던 이들이 생명을 잃거나,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폐업했습니다. 하지만 요즈음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레트로함을 즐기는 젊은 세대의 유입입니다. 현재 한국의 젊은 층이 레트로함에 관심을 보이는 것처럼, 일본의 옛 문화를 상징하는 재즈 킷샤에 젊은 층이 조금씩 유입되고 있습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재즈 킷샤를 비롯한 옛 카페, 킷샤텐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SNS 채널들이 생겨났습니다.
2010년 문을 닫았던 재즈 킷샤 마사코는 현재 다른 위치에서 다시 영업 중입니다. 당시 일했던 젊은 직원들이 힘을 합쳤다고 합니다. 현재의 재즈 킷샤 마사코는 20대부터 50대까지의 직원이 일하고 있습니다.
2023년은 재즈 킷샤에게 희망적인 한 해였습니다. 문을 닫는 대신, 새로운 주인을 만난 재즈 킷샤가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재즈 킷샤를 자주 다니던 손님이 새로운 주인이 되어 가게를 인수해 운영하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현재 이구루의 직원 절반은 20-30대입니다. 고토 씨는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이구루를 꿈꾸고 있습니다.
이렇게 재즈 킷샤를 비롯한 킷샤텐이 인기를 얻자 재미있는 현상도 생겨났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킷샤텐의 경쟁자, 스타벅스인데요, 일본 스타벅스는 2020년의 테마 중 하나로 킷샤텐을 선정했습니다. 특정 기간 동안, 스타벅스는 한자로 된 옛스러운 간판을 달고 킷샤텐의 메뉴를 특별 판매했습니다. 프렌차이즈 카페에 밀려 사라진 재즈 킷샤들이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지금입니다.
이구루는 제게 타임머신 같은 곳이었습니다. 가게가 처음 문을 연 1967년에도 같은 풍경이었을 것만 같아서요. 그리고 가만히 고토 씨가 재생하는 음악을 듣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이구루의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구루는 그렇게 과거와 현재, 세대와 세대를 잇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고토 씨에게 하니 활짝 웃었습니다. 가게 문 앞까지 나와 배웅해 주는 고토 씨의 모습을 보며 마음 한 켠이 따뜻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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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여러분, 이번 레터는 어떠셨나요?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에서 시작해, 호리구치 커피, 그리고 재즈 킷샤 이구루까지 긴 여정을 함께 했습니다. 분량이 너무 길어 몇 화로 나눌까 싶었는데, 함께 있는 게 더 유기적일 것 같다는 피드백을 받고 하나로 합쳤습니다.
주말이자 추석 연휴의 시작입니다. 여러분의 계획은 어떻게 되실지 궁금합니다. 아무쪼록 여유를 잃지 않는 날이 되셨으면 합니다. 좋은 커피와 함께 재즈를 누리는 하루라면 더할 나위 없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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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좋아하는 재즈 플레이리스트를 첨부합니다. 그럼, 다음 뉴스레터로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어떤 주제가 좋을까요? 추천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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